1. 들어가며
지난 번에 지역주택조합 환불보장약정의 효력 및 대응방안에 대하여 살펴본 바 있다.
=> 지역주택조합 환불보장약정의 효력 및 대응방안 <=
그런데 얼마 전 지역주택조합 환불보장약정의 효력에 관한 새로운 대법원 판례가 선고되었다.
바로 대법원 2025. 12. 24. 선고 2025다216757 판결이다.
위 대법원 판결은 환불보장약정이 사원총회의 결의 없이 체결된 것이어서 무효로 인정되는 경우에, 환불보장약정이 무효임을 이유로 한 조합원가입계약의 취소 및 분담금 반환 청구에 제한을 가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이하에서는 위 대법원 판결의 쟁점 및 판단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2. 사안의 개요
가. 피고는 대전 동구 D 일원을 사업시행구역으로 하여 지역주택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조합으로서 2021. 10. 29. 주택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
나. 원고는 2021. 4. 27. (가칭)B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회(이후 조합설립인가에 따라 피고로 전환되었다)에게서 ‘환불보장약정’이 기재된 안심보장증서를 교부받으면서 조합가입계약(이하 ‘이 사건 조합가입계약’)을 체결하였다. 위 환불보장약정은 ‘2021. 12. 31.까지 지역주택조합설립인가를 받지 못할 경우 해당 조합원이 기납부한 납부금 전액을 환불할 것을 보장한다.’는 내용이다(이하 ‘이 사건 환불보장약정’).
다. 원고는 이 사건 조합가입계약에 따른 분담금으로 피고에게 2021. 4. 22. 2,500만 원, 2021. 7. 14. 4,000만 원, 2021. 11. 1. 3,840만 원 등 합계 1억 340만 원을 납부하였다.
3. 원심의 판단(서울중앙지방법원 2025. 8. 13. 선고 2024나70571 판결)
원심은 이 사건 환불보장약정은 총유물의 처분행위에 해당하는데 피고 총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아 무효이다. 원고가 이 사건 환불보장약정이 유효한 것으로 믿고서 이 사건 조합가입계약을 체결한 것은 중요부분의 착오에 해당하고, 그 착오에 원고의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이 사건 조합가입계약은 원고의 착오 취소 의사표시에 따라 취소되었다.
4. 대법원의 판단
가. 법리 설시
[대법원 2025. 12. 24. 선고 2025다216757 판결] 가. 지역주택조합 가입계약은, 계약 체결 상대방이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분담금 등을 납입하고 지역주택조합은 주택건설사업을 통하여 신축하는 아파트 중 해당 세대에 관한 소유권을 조합원에게 이전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이다. 조합원이 조합가입계약을 체결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주택건설사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어 신축 아파트에 관한 소유권을 취득하는 것이다. 한편 조합원이 조합가입계약과 함께 환불보장약정을 체결하는 주된 취지는 조합가입계약의 목적 달성 실패로 인한 손해를 최소화하려는 것이지, 분담금 반환을 절대적으로 보장받으려는 데 있다고 보기 어렵다. 민법 제276조 제1항은 ‘총유물의 관리 및 처분은 사원총회의 결의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비법인사단인 지역주택조합이 조합가입계약과 함께 ‘사업의 일정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거나 그로 인하여 사업이 중단 또는 실패할 경우에는 조합원이 납입한 분담금을 반환하겠다’는 내용의 환불보장약정을 체결하면서 총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았다면, 환불보장약정은 총회 결의 없는 총유물의 처분행위에 해당하여 무효가 될 수 있고, 이는 함께 체결한 조합가입계약의 무효 또는 취소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환불보장약정이 무효가 되어 환불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되었더라도, 조합가입계약의 목적인 신축 아파트 소유권 취득에는 지장이 없는 경우가 존재할 수 있다. 이때 조합원이 ‘환불보장약정에 따른 환불이 가능한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조합가입계약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만한 선행행위를 하였다면, 이후 조합원이 환불보장약정의 무효를 이유로 조합가입계약의 무효 또는 취소를 주장하며 지역주택조합을 상대로 분담금 반환청구를 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모순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대법원 2025. 5. 15. 선고 2024다239692 판결 참조). |
나. 판단
대법원은 위와 같은 법리 하에서, 원고가 이 사건 환불보장약정에서 정한 환불 조건이 성취되지 않을 것으로 확정된 이후에도 피고에게 분담금 환불을 요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축 아파트 소유권 취득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 사건 조합가입계약에서 정한 분담금 중 적지 않은 금액을 납부한 점에 비추어 피고로서는 원고가 이 사건 환불보장약정에 따른 환불이 가능한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 사건 조합가입계약 유지를 원한다고 신뢰하여 이를 바탕으로 주택건설사업을 진행한 것으로 보이므로, 이러한 피고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럼에도 원고가 이 사건 소를 통하여 이 사건 조합가입계약에 대한 무효 또는 착오 취소 주장을 하는 것은 기존의 분담금 납부행위와 모순되는 행위이고, 원고의 모순된 태도로 피고와 나머지 조합원들이 원고 몫의 분담금에 상응하는 손해를 부담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나거나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으므로, 피고의 총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이 사건 환불보장약정이 무효라는 이유로 이 사건 조합가입계약까지 무효라고 보거나 원고가 이를 착오 취소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원고가 피고에게 이 사건 조합가입계약의 무효 또는 취소를 주장하면서 분담금의 반환을 구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하였다.
5. 해설
가. 대법원 2025. 12. 24. 선고 2025다216757 판결의 의의
앞선 게시물(지역주택조합 환불보장약정의 효력 및 대응방안)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와 같이, 지역주택조합의 환불보장약정은 조합의 총유물인 분담금의 처분행위에 해당한다. 그리고 사원총회의 결의 없이 이루어진 총유물의 관리 및 처분은 무효이므로, 사원총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은 환불보장약정은 무효이다. 따라서 조합원은 원칙적으로 총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환불보장약정이 무효라는 이유로 조합가입계약까지 무효라고 보거나 조합가입계약을 착오 취소할 수 있다.
대법원 2025. 12. 24. 선고 2025다216757 판결은 위 법리를 부정하는 판결은 아니고, 위 법리의 적용 범위를 제한한 판결이다. 위 법리에 따른 조합가입계약의 무효 또는 취소 및 그에 따른 분담금 반환 청구는 원칙적으로 가능하지만, 조합원이 조합에 대하여 환불보장약정에 따른 환불이 가능한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 사건 조합가입계약 유지를 원한다는 태도를 보였고, 조합이 이를 신뢰하여 사업을 추진한 사실이 인정된다면, 그 때에는 환불보장약정이 무효임을 원인으로 한 조합가입계약의 무효 또는 취소 및 그에 따른 분담금 반환 청구가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사안 구별의 필요성
법원은 어떠한 경우에 환불보장약정이 무효임을 원인으로 한 조합가입계약의 무효 또는 취소 및 그에 따른 분담금 반환 청구를 인정하고, 어떠한 경우에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모든 경우의 수를 완전히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아래와 같다.
1) "사업이 무산되거나 중단된 경우 분담금을 반환한다."라는 내용의 환불보장약정을 하였는데 이후 사업이 무산되거나 중단되어 분담금 반환 청구를 한 경우에는 이를 인용하는 경향이 있다(대법원 2025. 3. 27. 선고 2024다290581 판결 참조).
2) "조합설립인가가 되지 않으면 분담금을 반환한다"라는 내용의 환불보장약정을 하였는데 이후 조합설립인가가 되었고, 조합설립인가 이후에도 조합원의 분담금 납부가 이루어진 경우에는 분담금 반환 청구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대법원 2025. 12. 24. 선고 2025다216757 판결 참조).
다. '신의칙 위반'을 인정한 이유 - 분담금의 공공성
대법원은 환불보장약정이 무효임을 원인으로 한 조합가입계약의 무효 또는 취소 및 그에 따른 분담금 반환 청구가 허용되지 않는 근거로 '신의칙 위반'을 들었는데, 민사소송에서 '신의칙 위반'은 매우 예외적으로만 인정되는 것이므로 대법원이 어떠한 이유로 '신의칙 위반'을 인정한 것인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환불보장약정이 유효하다고 가정하더라도 '조합설립인가가 되지 않는다'는 조건의 불성취가 확정되어 환불보장약정에 따른 분담금 반환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환불보장약정이 무효라는 이유로 조합가입계약의 무효 또는 취소를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트집잡기에 불과하다는 인식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분담금의 공공성이다. 위 판결에서 대법원은, "피고가 시행하는 주택건설사업은 그 성패에 따라 다수 조합원의 주거 마련 여부가 좌우될 수 있는 만큼, 위 사업의 재원으로 사용되는 조합원 분담금은 상당한 공공성을 띠게 된다. 만약 원고에 대한 분담금 반환으로 피고에게 재원 부족이 발생한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나머지 조합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라고 판시하였다. 그리고 "원고의 모순된 태도로 피고와 나머지 조합원들이 원고 몫의 분담금에 상응하는 손해를 부담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나거나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결과로 볼 수 있다."라고도 하였다.
즉, 대법원은 환불보장약정이 무효임을 이유로 한 분담금 반환을 허용할 경우, 분담금을 반환하지 않았더라면 성공할 수 있었던 사업까지도 실패할 수 있게 되고, 사업 실패는 곧 다수 조합원의 피해로 이어지게 되므로, 다수 조합원 보호라는 공익과 분담금 반환으로 조합원 한 명이 얻게 될 사익을 비교형량하였을 때 다수 조합원 보호라는 공익이 중요하다고 보이는 사례에서는 신의칙 위반이라는 예외적인 법리를 동원해서라도 분담금 반환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6. 결론
대법원 2025. 12. 24. 선고 2025다216757 판결에 따라 지역주택조합에 대한 분담금 반환 청구가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서술된 게시물들이 보이는데, 그렇지 않다. 분담금 반환 청구가 허용되는 범위에 제한을 가하였을뿐 이다. 여전히 사실관계에 따라 분담금 반환 청구가 가능할 수 있으니, 사실관계를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동근 변호사 |
n 법무법인(유)린 파트너 변호사 n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 n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 n 15년차 로펌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