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라는 책을 읽었다. 책의 내용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때마침 이 책에서 말하는 바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사례가 나타났다. 바로 배우 조진웅의 사례다. 조진웅은 고등학생 시절에 수차례 중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있고, 성인이 되어서도 후배를 폭행하는 등 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는데, 그러한 사실을 숨기고 개명까지 하여 유명 배우로서 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2025. 12. 5. 디스패치에서 조진웅의 과거를 폭로하자, 인터넷의 온갖 커뮤니티가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그리고 불과 하루 만에 조진웅은 잘못을 인정(전부는 아니지만)하고 은퇴 선언을 했다. ([단독] "그래서, 아버지 이름을 썼다"…조진웅, 배우가 된 '소년범' | 디스패치 | 뉴스는 팩트다!, 조진웅 전격 은퇴 선언…모든 질책 겸허히 수용 | 한국경제)
조진웅은 은퇴 선언으로 사건이 조용히 묻히기를 기대했겠지만, 그 기대와는 달리 조진웅의 은퇴 선언은 새로운 불씨를 지폈다. 여러 쟁점들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큰 논란이 되는 것은 '30여 년 전, 이미 처벌까지 받은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금 다시 묻는 것이 타당한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쟁점에 대해서 많은 유명인사들이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서울대 로스쿨의 한인섭 교수님도 글을 쓰셨고,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도 글을 썼다. 주로 친민주 계열 인사들은 조진웅을 옹호하는 글을 쓰는 것 같고, 국민의 힘 등 야권 인사들은 조진웅의 활동을 반대하는 글을 쓰는 것 같다. 그런데 현재 각 정당의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조진웅을 옹호하는 글에 대해서는 비난 여론이 훨씬 우세해 보인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세력들조차도 조진웅을 옹호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이야기이다. 왜 그럴까? (한인섭 서울대 교수, “조진웅 은퇴는 아주 잘못된 해결책... 과거사로 생매장 말라” 일침 [전문], https://v.daum.net/v/20251208104848718)
'군중심리'라는 책을 한 번 훑어보기만 한 입장에서 함부로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이들의 글과 주장이 군중의 뜻에 반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인섭 교수님과 박범계 의원의 글을 읽어보면, 반대하는 의견이 있을 수는 있어도 비난까지 받아야 할 글로는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곱씹어볼 여지가 많다. 그러나 현재 군중의 뜻은 '죄 안 짓고 산 사람에게 돌아갈 기회도 없는 판에, 왜 죄 지은 사람이 많은 것을 누려야 하나'라는 것인 것 같다. '군중심리'에서, 귀스타브 르 봉은 "감정은 이성을 상대로 줄기차게 벌여온 투쟁에서 단 한 번도 굴복한 적이 없다."라고 말한다. 아무리 이성이 옳다 한들, 군중의 감정에 반하면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군중의 뜻에 맞지 않으니, 그 글의 당부와는 상관 없이 군중의, 심지어 같은 편 군중의 비난을 받는 것이다.
그러면 군중의 뜻과 감정에 반하는 말을 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소년법은 지금도 사회의 물밑에서 (군중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조용히 잘 작동하고 있다. 또한 일 대 일, 또는 소수 대 소수로 대화와 토론을 나눌 때에는 이성을 기반으로 한 논리적 설득이 중요하다. 이렇게 조용히, 점진적으로 설득과 변화를 추구하면 언젠가는 큰 흐름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군중에 대한 정면충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인섭 교수님은 조진웅이 은퇴 선언을 한 것이 '아주 잘못된 해결책'이라고 하셨지만, 나는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본다. 한인섭 교수님의 말씀은 한 개인이 군중 앞에 서서 당당하게 맞서라는 것인데, 그런다고 군중의 태도가 바뀔까? 조진웅이 은퇴 선언을 하지 않고, '30년 전에 죄를 저질렀다고 평생 숨어 지내야 합니까, 나는 활동을 계속 하겠습니다'라고 했다면 군중과, 군중을 등에 업은 언론의 폭격을 맞고 재기불능 상태가 되어 소멸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고 아무도 조진웅을 군중에 맞선 영웅으로 보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반성할 줄 모르는 범죄자이자 탐욕의 화신으로 낙인찍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속한 은퇴 선언으로, 대중은 이미 전과자를 사회에서 몰아낸다는 목적 달성을 했다. 이에 더 이상 대중은 조진웅 본인의 과오에는 별 관심이 없고, 일반론적인 상황과 이념에 대한 다툼으로 전쟁터가 옮겨졌다. 그 논쟁의 결과 군중의 뜻에 변화가 생긴다면, 그때 다시 나타나 활동을 시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논쟁의 중심에서 벗어났다는 측면에서, 또한 미래의 기회를 남겨두었다는 측면에서 은퇴 선언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
이동근 변호사 |
|
n
법무법인(유)린 파트너 변호사 n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 n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 n 14년차 로펌 변호사 |